YONSEI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LUMNI ASSOCIATION

찬란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에비슨 (O.R. Avison, 1860-1956)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및 연의전문학교 교장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에비슨은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임하던 중 1893년 7월 미 북장로회 선교부의 파송으로 한국의 제중원에 부임하였다. 1894년 제중원의 운영권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에비슨은 이후 콜레라 예방과 치료, 의학교육, 세브란스병원 설립 등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고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및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겸임하면서 우리나라 사학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김필순 (金弼淳, 1878-1919)

독립운동 위한 이상촌 건설에 투신한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이 발표되고 일본군과 시가전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남녀유별의 벽을 넘어 동생과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부상병들을 간호하게 했다.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김필순은 모교에 남아 후진 양성에 힘썼다. 한일합병 당시에는 신민회 회원으로 망명길에올라 중국간도에서 이상촌을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 하여 우리나라 독립의 기틀을 닦았다.

대암 이태준 (大岩 李泰俊, 1883-1921)

몽골인들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독립운동가 이태준
세브란스의학교에 재학하던 중이던 이태준은 1914년 김규식과 함께 몽골로 떠났다. 이태준은 몽골에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설립하고 성병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가들의 숙박지요, 연락 거점이 되었다. 이태준의 치료로 완쾌된 몽골인들은 이태준을 ‘신인(神人)’ 이요,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이라 불렀다. 그의 치료 공적을 인정한 몽골 국왕은 이태준에게 ‘귀중한 금강석’이라는 뜻을 지닌 국가훈장을 수여했다.

대의 박서양 (大醫 朴瑞陽, 1885-1940)

신분의 벽 뛰어넘은 대의 독립운동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된 박서양은 세브란스의학교에 교수로 부임해 처음에는 화학을, 나중에는 해부학 과 외과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1917년 세브란스의학교가 전문학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박서양은 북간도로 떠났다. 그는 북간도에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었다. 박서양은 북간도 대한국민회에서 군의로도 활동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소의에서 나라를 구하는 대의로서 역사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했다.

김창세 (金昌世, 1893-1934)

민족을 위해 공중위생학 연구한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용강 출신인 김창세는 선교사로 일했다.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며, 임시정부 산하 대한적십자회가 운영하는 적십자회병원에서 진료활동과 부설 간호원 양성소 창립에 참가했다. 1923년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위생학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보건학 박사가 되었다. 안창호 선생의 주치의였던 김창세는 민족의 건강을 확보하는 일이 민족을 부흥시킬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길이라 보고 공중위생학 연구에 매진했다.

김명선 (金鳴善, 1897-1982)

한국 최초의 이학 박사
김명선은 일제 식민기에 미국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이학 박사다. 한국전쟁 후 폐허로 변한 세브란스에서, 세브란스의대와 병원 재건을 위해 통합안을 주도했으며, 세브란스의대와 연희대학교를 '연세대학교'로 통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격동의 반세기를 세브란스와 함께한 영원한 스승 김명선은 1982년 4월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교재로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긍선 (吳兢善, 1878-1963)

세브란스 의전 최초 한국인 교장
구한말의 의사, 사회 사업가이다. 배재 학당을 졸업하고 독립 협회, 만민 공동회에서 일하다가, 미국에 유학하여 루이빌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피부과 의사가 되었다. 의학 공부와 함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자격도 얻은 뒤 귀국하였으며, 군산, 광주, 목포 등 미국 남장로교 선교 지역인 호남에서 의료 선교를 통한 사회 사업에 종사하였다. 한편, 1934년에는 세브란스 의전 제2대 학교장 등을 지냈다. 해방 이후에는 잠시 한민당 창당과 구황실 재산 관리국 국장을 지냈으며 만년에는 사회 사업과 의료 활동,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영춘 (李永春, 1903-1980)

평남 용강군 출생.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였다. 그 후 이 학교에서 병리학을 연구하다가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5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5년 개정중앙병원, 1948년 정읍시에 화호중앙병원을 개원하였다. 1951년 개정간호학교, 1952년 화호여중, 1961년 화호여고를 설립하였다. 1957년 일심영아원(一心嬰兒院), 1965년 군산에 일맥(一麥)영아원을 설립하여 버림받은 어린이 양육에 힘썼다. 대한의학협회 대의원 ·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이사 ·대한공중보건협회장 ·한국기생충박멸협회장 ·대한가족계획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의사로서 진료사업과 농어촌위생에 힘썼고, 사회사업가로서 학교를 설립하여 농어촌지역 주민의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한적십자사 봉사상을 받았으며,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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