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봉학(玄鳳學 1922–2007)

한국의 쉰들러, Humanist

 현봉학은 1922년 함경북도 성진 욱정에서 함흥 영생고녀 교목을 지낸 현원국 목사와 한국 장로교 여전도회장을 역임한 신애균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함경도의 함흥고보(고등보통학교)와 1944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했다. 졸업 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현봉학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미 감리회 선교사 애리스 윌리엄스를 만나고 그녀의 주선으로 1947년 9월 미국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애리스 윌리엄스 부인의 아들인 윌리엄스 박사는 당시 임상병리학 분야에서는 미국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현봉학은 그의 지도 아래 2년간 임상병리학 펠로우쉽을 수료했다. 1949년 귀국한 현봉학은 자신의 모교인 세브란스의과대학에 임상병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도입했다. 혈액학, 혈청학, 세균학, 생화학, 혈액은행 개념이 합쳐진 새로운 학문이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곧 발발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현봉학은 해병대사령관 고문, 미 10군단 사령관 고문으로 근무했다.(그림 1)

그림 1. 현봉학 박사

  1950년 12월 북한에 진군한 미군과 한국군은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철수를 서두르고 있었다. 미군과 한국군의 철수로 수십 만의 함흥과 흥남의 주민들이 다시 공산 치하에서 고통받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당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미 10군단에 근무하던 현봉학은 북한이 다시 공산당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면 기독교인을 포함한 주민들에 대한 박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 10군단 사령관인 알몬드 소장을 만나 민간인 철수를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사령관은 군단 병력의 철수가 우선인 데다가 민간인 철수를 상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현봉학의 거듭된 설득과 에드워드 포니 대령, 민사부 모아 국장,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의 도움은 마침내 사령관을 움직였다. 알몬드 소장은 군함을 이용한 민간인 철수를 결정, 9만 8천여 명의 북한 동포들은 무사히 흥남을 떠나 남한으로 향하게 됐다.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피난민들은 선박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차량 밑, 장갑차 위에서 ‘모세의 기적’처럼 차가운 겨울 바다를 건너 거제도에 도착했다.

  현봉학은 1953년 종전 즈음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뮐렌버그 병원과 뉴저지 주립 의과대학 그리고 토마스제퍼슨 의대에서 근무했다. 병원과 대학에 근무하는 동안 그는 한국인을 비롯해 수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뮐렌버그 병원에서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그가 정년퇴임을 한 1988년 새롭게 전산화된 임상병리학 연구실을 ‘현봉학 병리교실’로 명명했다. 퇴임과 함께 귀국한 현봉학은 아주대학교병원(1996-2002)에서 근무하며 임상병리학 과장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서재필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비롯해 안창호, 안중근, 장기려 등을 기리는 사업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보건의료협력본부 고문을 맡았다. 또, 연변에 있는 윤동주의 묘를 찾고자 수년간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1985년 연변대학의 교환교수로 가는 와세다대학 오오무라(大村)교수에게 부탁해 그의 묘소를 발견했다. 이후 윤동주 묘소를 새롭게 단장하고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했다. 저서로는 수많은 의학서적 외에 ‘중공의 한인들’(1984),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과 흥남 대탈출’(1999) 등이 있다.(그림 2)

그림 2. 한국의 쉰들러 (책 표지)

  현봉학은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한국의 쉰들러’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이 혹시 실수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시 십만 명의 고향 피난민을 흥남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나는 적어도 백여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든 장본인이나 다름없다”라며 혹시 원하지 않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그들의 삶을 망가트린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나아가 그는 “앞으로 이산가족 재상봉과 재결합은 나의 생애를 두고 노력하고 이루어야 할 일이다”고 다짐했다. 그가 1985년 설립된 미중 한인우호협회나 1991년 창설된 국제 고려학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유도 이런 결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와 평화, 인류애를 위해 그리고 한평생 조국의 통일과 이산가족의 만남을 위해 헌신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2007년 11월 25일 자신의 반생을 보냈던 미국 뮐렌버그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12월 국가보훈처는 그를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으며, 2016년 12월 세브란스빌딩 앞에 동상이 건립됐다. (그림 3)

그림 3. 세브란스빌딩 앞의 동상

[흥남철수작전의 역사적 배경과 개요]

흥남철수작전은 세계전사(世界戰史)상 가장 대규모로 성공한 해상철수 작전이다. 이 작전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동북부 전선(함경남북도 일원)에서 작전 중이던 아군주력 부대가 흥남항을 통해 대규모의 해상철수를 단행한 군사작전이다. 1950년 10월 1일 동해안에서 38선을 돌파한 국군 제1군단은 공산군에 대한 추격을 계속해 한만 국경선까지 북진했다. 국군보다 한 걸음 뒤늦게 원산에 상륙한 미 10군단도 그 예하의 해병 제1사단으로 하여금 장진호 쪽을 공격하고 제3사단을 예비대로 확보하는 한편, 이원(伊院)에 따라 상륙한 제7사단을 혜산진 쪽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11월 말 불법 개입한 중공군이 전면 공세를 감행하고 나오자 국군과 유엔군의 부대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국군 제3사단이 12월 10일 성진을 출항해 부산으로 떠난 다음, 이 지역에 남은 미군 3개 사단의 지휘 아래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12월 15일 미 해병 1사단의 출항을 시작으로 17일 국군수도사단, 21일 미 제7사단이 차례로 흥남항을 벗어나고,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던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을 철수하면서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세계전사상 가장 큰 규모로 민간인과 군인을 구출한 이 해상철수 작전에서 국군과 유엔군 10만 5,000명의 병력과 1만 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비와 물자를 옮겼을 뿐 아니라, 9만 8,000여명에 이르는 북한 피난민들을 구출했다. (그림 4) 흥남철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북부에서 나치 독일군에 포위됐던, 35만명의 연합군이 모든 군수 장비와 물자를 포기하고 1940년 5월 프랑스 덩케르크 항구를 통해 성공적으로 영국으로 철수한 덩케르크 해상철수 작전에 버금가는 성공한 해상철수 작전으로 세계전쟁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관련 영상]

KBS [지식실험] :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과 흥남철수

https://youtu.be/Sx6G4Sn7-P4

SBS 역사채널e :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 흥남철수작전

https://youtu.be/QQ4IvyJWSU0

KBS역사저널 : 의사 현봉학, 흥남에서 피란민 구출을 호소하다

https://youtu.be/bnrWk7jCU9o

현봉학과 흥남철수작전

https://youtu.be/Cc2RqGUJY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