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LUMNI ASSOCIATION

찬란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최재유 (崔在裕, 1906-1993)
보건사회부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교육행정가 및 의학자

본문

인물연혁
1906년 8월 19일 인천 부내면 내리 출생
1929년 세브란스 의전 졸업 
1929 ~ 1932년  피부비뇨기과 조수, 강사 
1933년 안과 강사 발령 
1934 ~ 1937년  일본교토제국대학 유학,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38년 귀국 및 안과 조교수 발령
1940년 세브란스병원 부원장
1945년 세브란스병원장 겸 안과 과장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행림원 (현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 원장 겸직 
1950년 대한안과학회장 
1955년 초대 보건사회부장관  
1956년 이화여대 부총장 
1957년 문교부 장관  
1967년 연세대 재단 이사장 
1993년 5월 작고
인물정보

최재유 (崔在裕, 1906-1993)

보건사회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교육행정가 및 의학자

 

  최재유는 1906819일 인천 부내면 내리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충남 아산군으로 이주해 부친이 세운 소학교에서 4년을 마치고 온양에 있는 보통학교로 편입했다. 이후 서울에서 배재고보를 마치고 1922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1929년에 졸업했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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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젊은 날의 최재유 교수님



 최재유는 졸업 후 오긍선이 있던 세브란스병원 피부과에서 의국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안이비인후과를 안과와 이비인후과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안과의 책임을 맡으라는 학교의 권유에 따라 19344월 안과 강사로 임명됐고, 1934년 조선인 최초로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일본 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했다. 박사 과정 중 여러 논문을 일본안과학회지에 발표했고, 1937년 일본 교토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한다. 1938년 귀국해 세브란스의전 안과 조교수로 발령받았다. 1939년 안과 교수, 1940년 세브란스병원 부원장 발령 이후 1941년 앤더슨 교수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 후임으로 안과와 이비인후과 과장을 맡게 된다. 재임 중 안과는 점차 자리가 잡혀갔으며 환자 수도 많이 늘어났다.(그림 2) 평소 언변이 좋고 인정이 많기로 유명했던 최재유에 대한 일화가 많이 있는데 학생 중에는 그의 강의에 매료돼 안과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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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 안과 검사실의 최재유(1938)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며 세브란스병원장 겸 안과 과장을 맡은 최재유는 신탁과 반탁, 좌익과 우익의 혼란한 시기에 세브란스병원의 살림을 맡아 헌신했다. 1948년에는 김활란 박사를 도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신설된 행림원(현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의 원장직도 맡아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광복 이후 일제로부터 금지됐던 전문 학술단체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재유는 1947년 대한안과학회를 창립하고 1950년에는 제3대 대한안과학회장을 맡아 초창기 학회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그림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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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최교수 개강 10주년 기념(19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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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졸업식 후 제자들과 같이(19486)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란을 가 부산경찰병원에서 복무하던 중(그림 5), 1951년 피란처인 부산에서 공중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관직을 맡은 후 1952년 보건부 장관이 됐다. 한국전쟁 중 수많은 피난민이 남하했는데 당시 이들의 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 의약품 및 기재가 부족했다. 이에 보건부는 UN군당국과 협의해 전국에 500개의 보건진료소를 조직 배치했고, 전쟁 이후에는 파괴된 의료기관을 복구를 위해 정부 각 부처 및 UN의 도움을 끌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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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5. 부산경찰병원 시대(6.25사변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그해 겨울에는 남한 일대에 천연두가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1951년 보고된 환자 수만도 43,213명이었고 그중 11,530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재유는 전시 전염병 예방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 공중보건복지부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전 국민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1955년 보건사회부 초대 장관으로 취임해 한국전쟁으로 인해 최악의 빈곤 상태였던 우리나라의 보건행정 최고 책임자가 됐다. 전시로 혼란이 심했던 와중에 국민의 보건을 위한 시책을 펴고 열악했던 피란민들의 환경에서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힘썼다. 보사부 장관 시절 그는 국내에 전문의 제도를 채택했을 뿐 아니라 국립의료원을 창설하는 등 보건행정에 크게 기여했다.(그림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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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최재유 장관 주재로 열린 국립의료원 설립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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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7. 보사부장관시절 미육군 군의차감 접견



  1956년 보건사회부 장관을 사임하고 6월 이화여대 부총장에 취임해 학교 발전에 힘쓰다 다시 195711월 문교부장관으로 입각해 교육행정에도 공헌했다. 연세대학교 재단이사 및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연세대학교로 합동한 후 1962년 세브란스병원이 서울역전에서 신촌캠퍼스로 이전해 10년간 방치됐던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 자리 개발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기여했다. 1970년 고려대학교는 우리나라 보건 및 교육행정에 큰 공적을 세운 노고를 기려 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그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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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8. 고려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



  최재유는 1974년부터 인덕학원 이사로 선임됐고 1983년부터 별세하기 전인 1993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하며 인덕학원의 기반을 다졌다. 1993527, 87세의 일기로 서울 사직동 자택에서 작고했다.



[관련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AlD1Y93-mY (연합아카이브-연합뉴스)

참고자료
대한안과학회50년사, 대한안과학회, 1998
성암 최재유박사 추모문집, 최재유박사추모문집 편찬위원회, 1995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123년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안과학교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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