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SEI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LUMNI ASSOCIATION

찬란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발상지로서 … 우리나라에 전해온 근세의학의 역사 중에 가장 광채 있는 페이지를 차지한 것도 세브란스 병원이거니와 우리 의학의 발전적 과정에 있어서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세브란스 병원이다.” (김두종, [ 한국의학사 ], 486쪽)

광혜원_제중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7세기 무렵이었다.

실학자들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학 관련 책들을 읽고 서양의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글을 통해 이를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서양의학의 수용은 1876년 조선이 개항되면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개항과 함께 서양문물의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을 무렵인 1884년 12월, 최초의 선교의사로 한국에 온 알렌은 갑신정변에서 심하게 부상을 당한 당시의 실력자 민영익을 살려내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양의학의 효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결과, 1885년 4월 10일 알렌의 건의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서울 재동(현재 헌법재판소 자리)에 세워졌다. 이후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 왕실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1887년에는 구리개(현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부근)로 이전, 병원의 규모를 확대했다.

초기의 제중원은 조선정부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였다. 조선정부는 건물과 재정을 지원하고, 선교부는 의사와 간호사의 파견하여 진료하면서 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했다.

재동 제중원
알렌
구리개 제중원

제중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알렌은 한국 내 의료진 양성을 위해 의학교육을 추진하였고, 고종은 제중원 북쪽에 위치한 가옥을 구입해 학교 교사로 사용하게 했다. 1886년 3월 29일 선발된 1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교육 기관인 제중원의학교가 문을 열었다.

1887년 9월, 알렌이 주미 한국 공사관의 참찬관으로 취임하자 제중원의 책임은 헤론(J. W. Heron), 빈튼(C. C. Vinton)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병원의 운영이 점차 부실해지고 의학교육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893년 7월, 새로 부임한 에비슨은 제중원의 정상화를 위해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북장로교 선교부로 넘길 것을 요구하였고 갑오개혁 때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이로부터 제중원은 정부와 관련을 끊고 완전한 선교의료기관으로 재편되었다.

에비슨은 보다 나은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의 설립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00년 미국에서 만난 세브란스(L.H. Severance) 씨로부터 병원 설립 기금 45,000달러를 기부 받아 1904년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 서울역 맞은 편 세브란스 빌딩 자리)에 병원을 세웠다. 이때부터 병원의 이름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세브란스
에비슨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육도 체계적으로 실시되어 1908년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면허를 부여받았다.

1909년, 학교 이름을 세브란스의 학교로 개칭하였고, 1913년에는 서울에 있던 각 선교 교파가 공동으로 세브란스를 지원하게 되면서 학교 이름을 세브란스연합의 학교로 바뀌었고, 1917년에는 전문학교 규칙에 따라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로 인가되었다. 한편 1906년 9월에는 쉴즈(E. L. Shields, 1868~1941)가 세브란스병원에 간호부양성소를 세웠고, 1915년에는 쉐플리 (W. J. Scheifley, 1892~1958)가 내한하여 한국 최초의 전문 치과학교실을 만들었다. 당시 일제에 의해 운영되던 관립 의료기관이나 학교와는 달리 세브란스는 유일하게 조선인을 위한 병원이자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일제 말기에 학교의 이름이 아사히 의학전문학교로 바뀌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해방과 함께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재탄생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시 교육령에 따라 전시연합대학에 편입되었으며, 전쟁 기간 중에는 거제도, 원주, 청도에 구호병원을 개설하여 의료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쟁이 종결된 후, 파괴된 건물 및 시설물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캠퍼스 구상이 이루어졌고 이것을 계기로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의 합동이 이루어지면서 연세대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1962년 캠퍼스를 신촌으로 이전하였고,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세브란스 병원과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보건대학원이 설립, 운영되는 등 의학교육의 종합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1978년부터 시야를 전국으로 돌려 원주의과대학의 설립(1978), 용인 및 광주분원 개원(1983), 강남세브란스병원, 인천세브란스병원 개원(1983) 등으로 그 규모를 점차 확대시켜 나갔고 1986년부터는 세계화에 발맞추어 심장혈관센터 개원(1991), 몽골의대와 자매결연 맺기, 몽골친선병원의 설립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시켰다. 이후 연세의료원은 임상의학연구센터 설립(1996), 안이비인후과병원 개원(1996), 임상의학연구센터 설립(1996), 안이비인후과병원 개원(1996), 최우수의과대학 선정(1997), 아동전문진료센터 개설(1999), 의료원 비전 선포(1999), 동은의학박물관 개관(2000), 이라크 의료봉사단 파견(2003) 등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위한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리고 2005년 제중원 설립 120주년을 맞아 새병원을 개원하면서 총 1,004개의 병상을 갖춘 초현대식 병원으로서 유비쿼터스 시스템 및 로봇 수술이라는 국내 최고의 첨단진료를 시행하며 한국 의료를 이끄는 선도적 기관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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